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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 사회에서 무엇이 옳은지에 대해 알고 있다. 그러나 때로 옳지 않음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생을 유지하면서 겪는 공통의 과정들이 있고 감정이나 욕구 변화가 유형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의심할 수 없는 것들을 짓누르는 것이 도덕의 탈을 쓴 종교이다. 종교는 성스러움을 앞세워 이러한 힘을 얻고 영향력을 유지한다. 그러나 진정 성스러움은 무엇인지, 또 성스러움 앞에 옳은 것은 무엇인지 의문을 갖는다. 대부분의 신화나 설화들이 그렇듯 성스러움을 얻기 위해 태생의 비범함을 이야기한다. 물론 문자 그대로 이해하는 것은 아니지만 성스러움이 갖는 권위는 실재하는 것에 뿌리를 두지 않는다. 실재하는 아버지와 어머니, 탯줄을 부정하면서 얻어낸 성스러움은 도덕의 이름을 빌려 보이지 않는 족쇄가 된다. second

도덕은 사회의 기반을 형성하는 보편적 질서로서 내적인 기준이다. 다시 말하지만 종교는 교리에 따라 그것을 성스러움으로 포장하여 기준으로 제시한다. 그러나 종교는 절대 도덕적 원천이 될 수 없다. 종교 안의 성스러움이라는 것은 세속적인 현상과의 구분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차별과 선택에서 기인하는 수직적 구조를 가지고 있고 종교는 그것을 체계화한다. 불행히도 성스럽다는 종교과 세속적인 사회는 뒤엉켜있고 도덕은 실재를 떠나있다. 도덕의 기준은 실재를 바탕으로 하는 누구에게나 유일한 무엇이 되어야 한다. 생명이 그것이 될 수 있고 이것은  개별적인 인간을 토대로 하는 절대적 기준이다.

나는 가장 명확한 실재의 반영을 믿고 따른다. 그것은 실재의 인식을 가능케 하는 대응적인 존재로서의 신이다. 가장 명확한 실재는 살아있음, 생명이다. 그것의 반영은 죽음이고 생명의 인식은 생명현상으로서 가능하다. 나는 생명현상이 곧 신이라고 생각한다. 인간 역시 이러한 신의 속성이 내재되어 있고 여기에는 보편성이 있다. 그래서 믿고 따르지만 추앙하지는 않는다. 이것이 신은 믿지만 종교를 가질 수 없는 이유이고 둘을 분리하여 생각하는 이유이다. 무엇보다 나의 신은 선악을 판단하지 않는다. 어쩌면 신과 종교는 서로 반대편에 있는지도 모른다.

생명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새싹 같은 밝고 깨끗한 이미지로부터 지키고 희생할만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 보통이다. 냉정하게 보자면 다른 생명을 갉아먹는 것 이상이 아니다. 이러한 생명현상은 제로섬의 원칙이 적용된다. ‘한 사람의 이득은 필연적으로 다른 이에게 그만큼의 손해를 가져온다’ 인간의 입장에서 보는 자연의 생리이자 이 문명화된 사회의 논리이다. 스스로를 자연과 분리하려 하지만 이 사회는 명백히 자연과 다르지 않다.

나는 미혼모에게서 두 생명의 관계를 본다. 하나는 생명 그 자체로서 존재하고 순수하게 살고자하는 본능만이 있다. 또 하나는 사회적인 존재로서 본능에서 시작된 자신의 욕구 또는 욕망을 사회적 요구와 동일시하는 존재이다. 문제는 생의 의지만은 동일하다는 것이다. 여기에 생명현상이 있고 신은 모습을 드러낸다. 그리고 우리가 볼 때 결론은 언제나 하나의 희생이다. 이것은 단지 선택의 문제이고 어떠한 결정을 하더라도 선하고 성스럽다.

이 작업은 종교 안에서 겪은 특정 경험을 토대로 하는 것도 아니고 단지 신에 대한 나름의 정의 안에서 도덕의 문제와 종교 일반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다. 성모상 선택의 이유는 내가 생각하는 신의 현상을 직접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대상으로서의 여성이 종교화된 것이기 때문이다. 몇몇 배타적인 개신교도들의 구미를 맞추고 싶은 새각도 없고, 천주교를 부정하지도 않는다.

보이지 않는 당신께서는 눈앞에 나타난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다면 이 모든 결정에 대해 잠시 눈감아 주시기를 바란다.